애자일 방식의 유연함에서 기인한 확장성이 갖는 장점에 대한 역사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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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폴 방식과 애자일 방식 사이의 차이

흔히 워터폴 방식의 딜리버리와 애자일 방식의 딜리버리를 비교할 때 각각이 가진 장, 단점을 논하곤 합니다. 두 방식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워터폴 방식의 딜리버리는 오랜 기간 이어져온 방법론으로써의 중앙 통제의 용이함과 일정과 범위 확정을 중심으로 한 계획성에서 나오는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애자일 방식의 딜리버리는 유연성과 확장성 측면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시장대응성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시장의 빠른 변화의 흐름과 복합적인 성향으로 인한 시장대응성이 어느 때 보다 강조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워터폴 방식의 딜리버리보다는 애자일 방식의 딜리버리에 대한 장점, 다시 말해 그 가치를 조금 더 인정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연성과 확장성, 이 두가지 가치는 현대사회에 들어서 새롭게 주목 받았던 것일까요? 혹시 이 요소들이 계획성과 통제의 용이성 보다 빛나던 사례는 인류사에 없었을까요? 예로부터 온고지신이라고 했습니다. 쉬운 말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은 과거 선조들이 이미 겪어 온 일이라는 뜻이죠. 결론적으로 위 질문에 딱알맞은 사례를 인류사에 빛나는 두 제국,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의 행정체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강력한 중앙통제력에 기반한 로마제국

로마제국은 서구 문명사에 위대한 유산을 남긴 제국이었습니다.(기원전 27년~서기 395년) 최대 영토는 기원후 117년 기준 지중해를 중심으로 서남부 유럽, 중동 일부와 아프리카 북부에 이르는 5백만 평방km, 최대 인구 7천만명으로써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불리우는 태평성대 시기를 오랜 기간(기원전 27년~기원후 180년) 지속시킬 정도의 저력을 가진 명실상부 최고의 제국이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이런 팍스 로마나 시기에도 속주(일종의 지방)에서는 종종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로마는 비교적 중앙집중적인 통치체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군대 역시 수도와 그 주변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방 혹은 속주에서 반란 등 소요가 발생했을 때 군대를 신속하게 파견해 진압하는 방식으로 혼란을 수습했던 것이죠. 신속한 군대의 파견을 위해서는 반드시 잘 갖춰진 도로망이 필요했고 로마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열성적으로 로마제국 전역에 도로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의 ‘도로망’을 보면 로마 제국의 ‘중앙집중성’과 ‘계획성’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로마의 유산, ‘Romatic Road’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런 로마의 ‘도로’은 2천년의 세월을 견딜 정도로 견고하게 그리고 표준에 따라 건설되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견고하고 규격에 맞춰 건설해야 했기때문에 로마의 ‘도로’는 그만큼 만들기 까다로웠습니다. 동원되는 인부는 해당 지역에서 차출했다고 하더라도 건설에 필요한 재료를 산지에서 건설지까지 운반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조명이란게 신통치 않아 낮시간에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을테니 주어진 시간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나아가 비틀어보자면, 견고하고 체계적으로 건설된 로마의 ‘도로망’이 어쩌면 제국의 확장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위에 설명한 대로 건설하기 까다로울 뿐더러 시간 제약마저 있는 상황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도로망’을 무한정 확장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더욱이 주요 군대 자체가 로마와 그 주변에 주둔해 있다 유사 시 파견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도로망’을 늘린다고 해도 정말로 ‘far far away’ 한 속주까지 보내는 것도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유연성과 확장성을 가졌던 몽골 제국

1206년 칭기즈 칸에 의해 건국된 몽골제국은 역대 2위의 국토면적을 점유했을 정도의 명실상부 대제국이었습니다.(1위는 대영제국) 가장 큰 영토를 점유했던 것으로 보이는 1279년 기준으로 전체면적은 로마제국의 약 7배인 약 33백만 평방km, 최대인구는 약 1억 1천만명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호령하다시피한 몽골제국이지만 원래 본거지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치우쳐진 내륙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제국의 정중앙에 위치했던 수도 로마를 중심으로 영토 확장과 통치를 이어갔던 로마 제국에 비해서 몽골제국은 정복 작업에 있어 불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광활한 대륙 전체를 약 160여 년(1206년 몽골제국 건국, 1368년 명나라에 의해 원제국 멸망)간 운영 할 수 있었을까요?

몽골제국의 지방통치 거점, ‘잠(Zam)’

몽골제국이 1, 2차에 걸친 대범하고 신속한 유럽원정을 감행하고 그 결과로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요인을 살펴보자면, 당대 최강의 군사력을 우선적으로 꼽아할 것 입니다. 그러나 대규모 정벌전의 결과로 확보한 광대한 영토를 그대로 방치했다면 몽골제국이 그 땅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측면에서 몽골제국이 광대한 영토를 유지하고 운영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잠(역참)’의 역할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이라는 것은 몽골제국 전역에 약 100리 단위로 설치된 일종의 지역 통치 거점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사실 몽골제국은 대륙을 크게 4개의 ‘울루스’라는 칸국으로 나누어 통치했는데, 이들은 자체적으로 칸을 선출하고 중앙의 대칸으로부터 추인을 받음으로써 일정 수준의 자치권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각각의 칸국은 몽골제국의 일원으로써 상당한 정도의 ‘연대성’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그 핵심으로써 ‘잠’이라는 표준화된 교통, 통신 체계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당초 단순한 초원의 숙박시설 정도로 기능하던 것이 오고타이 칸 시절부터 대륙의 교통 네트워크로 정식 채택되고 정비됨으로써 여러 칸국을 연결했던 것이었죠. 놀라운 것은 ‘잠’의 역할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팍스 몽골리카’를 열어 젖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대륙에 퍼져 있는 점과 같은 ‘잠’이 어떻게 팍스 몽골리카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는 다음의 몇가지 요인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잠’ 사이의 이동애는 정해진 루트가 없어 이동하는 자가 주체적으로 루트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와 달리 유목민족이었던 몽골족의 사고방식에 비춰볼때 굳이 도로를 만들 필요가 없었고, 자연스레 ‘잠’과 ‘잠’ 사이를 초원길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몽골은 이 선택을 통해 지역 통치를 위한 거점 혹은 플랫폼을 확보하는 동시에 유연성 또한 동시에 획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방송 캡쳐

또한 ‘잠’은 정보 교류의 거점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각각의 ‘잠’에 우편기관을 설치해 제국 내 정보교류 체계를 구축했는데, 일례로 칸의 명령에 따라 각 ‘잠’마다 전령과 사신들을 위힌 400필의 말을 준비해 두었다고 하네요. 이의 장점을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가장 급박한 정보라 하면 적의 침입을 들 수 있을테니, 서방에서 적이 침공해 들어오는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동방의 야만족을 토벌한다는 구실로 군사를 일으켜 몽골 서쪽 끝에 위치한 ‘잠’부터 침공해 왔습니다. 그럼 침공받은 ‘잠’에서 전령을 보내 바로 옆의 ‘잠’으로 소식을 전할테고, 소식을 전해 받은 ‘잠’에서는 군사적 지원을 보냄과 동시에 다음 ‘잠’으로 다시 전령을 보냅니다. 1, 2차 유럽원정 시 몽골군의 무시무시한 진격속도를 감안할 때, 서역의 침공 소식은 아마도 삽시간에 몽골전역으로 전파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몽골제국의 중앙정부는 신속하게 대응방안을 수립해 침공군에 대해 준비하고 반격을 가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런 일이 실제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정보의 전파를 위한 플랫폼으로써의 ‘잠’의 잠재력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잠'에 이런 패자를 제시하면 말과 숙소를 제공 받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쯤되면 몽골제국에 있어 ‘잠’은 광활한 영토를 통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이면서 가장 효과적인 단위라 할 수 있습니다. 통치를 위해 설치하는 일종의 지방 거점이자 몽골민족의 연대를 상징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설치할 수 있고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었으며 새로이 확보한 영토에 쉽게 설치 가능하다는 점에서 확장성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확장성 측면에서 조금 더 살펴보자면, ‘잠’이 늘어난다는 것은 영토적인 확장 외에도 타 문화권에 대한 확장(문화적 융합)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지역의 청금석과 중국지방의 고령토와 불 다루는 기술이 만나 청화백자가 탄생했다거나 북방 초원의 증류주인 소주가 우리나라에 전파된 사례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몽골제국은 역사 상 그 어느 제국보다 이교도를 포용하고 존중할 줄 아는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수도 카라코룸에는 국교인 불교 사원과 이슬람 사원, 심지어 서역의 교회까지 큰 갈등없이 공존할 정도로 열린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도로’에 비유되는 워터폴 방식, ‘잠’에 비유되는 애자일 방식

다시 워터폴과 애자일, 각각의 방식이 가진 장점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춰보자면, 워터폴 방식의 딜리버리는 로마 ‘도로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 자체에 내포된 중앙집중적 성향으로 인해 PM과 상위 이해관계자가 통제하고 관리하기에 용이하다는 장점과 동시에 사전에 계획을 철저히 수립해 그에 따라 일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해 프로젝트의 미래 예측가능성이 높다는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계획을 수립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수립 시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의사결정 권한이 중앙에 몰리기때문에 PL이하 개발자들이 상부의 지시와 그들이 수립한 계획만을 좆아 일을 진행해야 하는, 그래서 피상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밖에 없다는 단점도 안고 있습니다.

반면, 애자일 방식의 딜리버리는 몽골제국의 ‘잠’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유목민족의 특징처럼 약간은 계획이나 전략이 허술해 보일 수도 있고, 향후 진행상황이 불투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시장상황의 모호함과 불확실한 경쟁상대의 출현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애자일 방식이 가진 약간의 ‘엉성한’ 특성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계획의 ‘엉성함’은 유사 시 빠른 태세전환(계획 변경)을 가능케 하고, SM와 PO, 그리고 권한 집중의 ‘엉성함’은 개발팀에 대한 권한 위임으로 이어져 유사 시 효율적인 대응(재택 여부 혹은 기술적인 문제해결 등)을 유도합니다. 이런 유연함과 효율성에 더해 애자일 방식의 딜리버리는 빨리 시도해 보고 빨리 실패함으로써 교훈을 얻는다는 실패의 용인, 즉 ‘의도적 엉성함’을 통해 다양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확장성까지 확보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사회의 복잡성 및 모호함과 무한경쟁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일하는 방식의 프레임워크, 나아가 일종의 일하는 방식의 유력한 플랫폼으로써 기능하게 되는 것이죠.

실제 제가 진행했던 SI프로젝트에서도 애자일 방법론을 따르는 다수의 중, 소규모 프로젝트를 비슷한 시점에 띄워 각자 스케쥴에 맞춰 진행하고 추후 연계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대규모 서비스 플랫폼을 론칭한 사례가 있습니다. 서비스를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고 한창 홍보에 집중하고 있는 시점이라 그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프로젝트 진행 자체에 초점을 맞춰 보자면 다수의 프로젝트들이 애자일 방식으로 건강하게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으로 론칭한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경우에 비춰볼때, (단순 비교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언급한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과거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건설되었던 ‘잠’에 대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발한 시점은 각기 다르지만 ‘연결’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갖고 업무를 진행했고, 결론적으로 대규모의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

출처: 탈중앙화 스토리지가 뭘까요? (https://cobak.co.kr/community/16/post/344425)

위 이미지는 첫째 ‘분산형’, 둘째 ‘중앙집중형’, 셋째 ‘탈중앙형’ 정보흐름 체계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최근 블록체인이 주목받으면서 데이터 저장 체계를 표햔할 때 많이 사용되는 이미지입니다. 여기에 대입해 보자면 로마제국의 ‘도로망’은 중앙집중형 네트워크였을 것이고, 몽골의 ‘잠’은 아마도 탈중앙화 수준의 네트워크였을 것입니다.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분산형 구조가 데이터 보안 그리고 자치성 측면에서 가장 발전된 모델인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몽골제국의 ‘잠’은 결론적으로 이런 분산형 구조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몽골제국 후기에는 지방 국가(울루스)들이 각 지역을 다스리는 분산형 구조에 다가가기는 했지만, 어쨋든 그곳에도 각기 중앙정부가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잠’들이 뻗어나가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탈중앙화 모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세기 기준으로 가장 광활한 영토에 가장 발전된 형태의 지역 거점을 구축해 놓고 그 사이의 이동과 운영에 유연성을 가지면서도 영토 확장에 적합한 조직체계였다는 점에서 애자일 방식의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현대사회와 그 안의 우리가 유심히 들여다 보아야할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본 포스팅이 가진 약점을 하나 고백하자면, 중앙집중형의 권력구조를 가졌던 로마제국 보다 탈중앙화된 권력구조를 가졌던 몽골제국이 더 오랜 시간 존속되거나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오는 논리적인 위태로움입니다. 위의 논의를 통해 몽골제국이 가진 유연성과 확장성의 우수함을 강조헸지만, 제국의 영속 측면에서는 이러한 장점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사회가 로마제국으로 부터 이어 받은 그 엄청난 건축적, 문화적 유산을 따돌릴 정도의 제국적 영향력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나타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죠. ^^;

다만, 우리는 몽골제국의 ‘잠’시스템이 가진 탁월한 유연성의 통찰과 궁극의 확장성을 우리 세상에도 가져와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의사결정의 탈중앙화를 지향하고 보다 유연하고 효율적인 프레임워크로써 애자일 방법론의 가치가 다시 한번 주목 받을 수 있고 결론적으로 현대 사회에 적합한 일하는 방법을 세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계획성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빠르게 시도해 보고 빠르게 실패함으로써 그 안에서 교훈을 찾아내고, 새로운 계획과 생각에 대해 열려 있는, 그리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으로써의 애자일은 그래서 몽골의 땅을 그토록 넓혔주었던 ‘잠’의 모습과 사뭇 닮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끝.

참고자료: